야만과 폭력성의 근원을 이 소설을 통해 탐구해보고 싶었다는 김훈 작가이다. 한때 기자 생활을 했던 작가이기 때문에 사실적 입각에 따른 역사소설을 주로 썼는데 이번에는 거의 신화와 마찬가지인 소설을 썼다. 나는 본래 김훈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번 서평을 적기 위해 조사하면서 알게 됐는데 영화로도 유명한 '남한산성'을 소설로 쓴 작가이기도 하더라.
나는 소설 작품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것에 대해 어려워한다. 아마 속뜻을 나 스스로 풀이하지 못해 크게 와 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인상 깊은 구절 몇 줄 소개함으로 리뷰를 간단히 마치려 한다.
초나라 군사들은 몸에 착 붙어서 팔다리의 힘으로 제어하기 쉬운 무기를 으뜸으로 여겼다.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적을 베지 못하면 내가 죽을 차례다. 칼이 적 앞에서 헛돌았을 때 나의 전 방위는 적의 공세 앞에 노출된다. 이때 수세를 회복하지 못하면 적의 창이 내 몸에 꽂힌다. 나의 공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고 적의 수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 적 또한 이와 같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생사는 명멸한다. 휘두름은 돌이킬 수 없고 물러줄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다. 모든 휘두름은 닥쳐오는 휘두름 앞에서 덧없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죽은 자의 혼백이 성벽을 보호해준다고 선왕들은 믿었다. 선왕들은 성 쌓는 터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깔려 죽고 매 맞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를 빻아서 회반죽에 버무려 성벽의 돌 틈에 발랐다. 뼈 반죽은 접착력이 좋아서 돌 사이에 어긋남이 없었다.
초원에 말 수만 마리가 모여 있었으나 어둠이 말들 사이에 고여서 말들은 각자 따로따로였다.
표가 박차를 지를 때 토하는 아랫배에 벼락이 꽂히는 느낌이었다. 벼락은 전신으로 퍼져 나가서 피를 솟구치게 했고 네 다리가 몸무게를 싣고 허공에 떠서 무게가 없어진 몸은 앞으로 내달렸다. 표의 박차를 받고 달릴 때 네 발굽이 토하의 몸을 땅속으로 분산시켰고, 땅의 속박에서 풀려난 몸은 바람처럼 흘러갔는데, 바람 속에서 몸은 살아서 떨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문장은 아름다웠으나 소설의 전달력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김훈 스스로 이번 소설에서 언어를 서사 전달보다 자음과 모음을 으깨서 발라놓았다고 했다. 좋게 읽은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다. 어떤 면에서 좋게 읽었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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