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무척 두껍다. 너무 두꺼워서 겁이 날 정도다. 나도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면 먼저 나서서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전과 후는 소소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책을 읽다가 저자가 의견을 낼 때 《총, 균, 쇠》가 정말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이 책 읽었었지 하고 내심 기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벽돌책 읽어봤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거고, 마지막은 서양과 동양 간의 격차에 대해 지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던 벽돌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였다. 사피엔스를 읽을 때조차 정말 충격이었고 유발 하라리의 상상 속의 질서는 읽던 당시 내 세계관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건대 그러한 유발 하라리의 책에는 지리학적 특성이 간과되어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사피엔스」와 「총, 균, 쇠」를 같이 읽기를 권장하는 바이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 이미 둘 중 한 권을 읽은 당신은 나머지 책도 읽을 역량이 충분히 있다. 둘을 읽는다면 인류에 대한 이해를 훨씬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낸 목적 중 하나는 인종차별을 과학적으로 합리화하려는 행태에 대해 논박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은 동서 방향으로 환경적 편차가 컸고 이로 인해 동서 방향으로 편차가 적은 중국에 비해 통일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 때문에 군주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군주 교체가 보다 수월한 편이었다. 반면에 중국은 한 번 통일을 이뤄내고 주변에 경쟁국이라 할만한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견제할 대상이 없어 그 잘못된 결정은 오래갔고 그만큼 피해도 컸다. 결정적으로 중국이 항구를 닫는 선택을 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동서양 간 차이는 벌어졌다. 이렇게 동서양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와 유럽 간 비교 등 광대한 분석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책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말로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완독한 사람들 기준으로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어려울 순 있으나 막 복잡한 전공책 읽는 것처럼 어렵진 않다는 말이다.
또 하나, 내가 총균쇠를 통해 더 나아가 생각한 점은 세계 정부였다.
지금도 세계 기구라는 허울 뿐인 기구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일 권력을 가진 정부이다. 부족 사회에서 추장 사회로, 추장 사회에서 국가로 복잡도가 증가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외세에 정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의 세력들이 연합을 구성하는 것, 혹은 정복하면서 복잡도가 높아지는 것이 있다.
그동안 복잡도가 높아지는 사례에는 전쟁이 전부였다. 예를 들어, 삼국통일시대에 당나라로부터 견제를 막기 위해 고구려 유민, 백제 유민, 통일신라 모두가 모여서 막아낸 것이라던가, 서양이 제국주의를 통해 영토를 넓혀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환경이 우리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아닐까 싶다. 지구 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있고 이를 막을 기구가 없다. 파리 협정을 통해 약속한 것들을 지키는 나라들은 거의 없고, 미국은 탈퇴한 지 오래다. 지구 온난화는 되먹임 작용을 통해 심해질 텐데 결국 지구 온난화가 기존의 기득권을 침해하기 시작하면 세계 각국은 세계 정부의 탄생에 찬성하지 않을까.
이 책은 나처럼 하나의 책을 사람마다 다양한 시각을 통해 인류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나는 그동안 역사책을 싫어했다. 그저 사실들의 나열로 느껴졌고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이 총, 균, 쇠를 통해 어떤 역사적 흐름이 내게 느껴졌고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주 조금은 보이지 않았나 싶다.
'도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장편소설 (0) | 2020.12.05 |
---|---|
11월 월간 완독 책 결산, 그리고 두 줄 평(2020) (3) | 2020.12.05 |
《김미경의 리부트》;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6) | 2020.12.04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김재진 산문집, 김영사 (0) | 2020.12.03 |
「2050 거주불능 지구」, 지속 가능한 미래는 있을까 (0) | 2020.12.01 |